
7년 전에 이미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온 구조물이, 왜 아무 보강 조치 없이 그대로 철거 작업에 들어갔을까요. 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건 단순한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구조적인 실패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이 사고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강선 파단, 7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다리의 16번째 거더(대들보) 오른쪽 약 12m 지점입니다. 그런데 2019년 정밀안전진단 보고서에는 바로 그 16번 거더에서 강선 파단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강선(PC강선, Prestressed Cable)이란 콘크리트 거더 내부에 삽입된 고강도 철선으로, 거더 양쪽 끝을 강하게 당겨줌으로써 상부 하중에 의한 처짐과 균열, 나아가 붕괴를 막아주는 핵심 구조 부재입니다. 쉽게 말해 이 줄이 끊어지면 거더는 제 역할을 잃고 언제든 주저앉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강선이 완전히 파단된 거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철거 작업 전 보강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바로는, 정밀안전진단 보고서는 대부분 두꺼운 파일로 묶여 서류함에 들어가고 실제 시공 단계에서 다시 검토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안전관리계획서나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작성할 때도 진단 보고서의 세부 내용을 일일이 반영하기보다는 표준 양식에 맞춰 형식을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안전관리계획서에 강선 파단 관련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의 거더를 철거할 때는 동바리나 버팀대 같은 가설 지지 구조물을 사전에 설치해 붕괴 하중을 분산시켰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동바리란 상부 구조물이 무너지거나 처질 경우 하중을 일시적으로 받아내도록 설치하는 임시 지지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번 서소문 고가 철거 현장에는 시방서에 명시된 버팀대, 지주, 동바리, 지보공 등의 안전시설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공사비 물량 내역서에 해당 항목 자체가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황당한 건, 서울시가 원가 심사 단계에서 낙하물 방지망 예산 4,730여만 원을 추가로 감액했다는 점입니다. 안전 대책의 필요성을 문서에서는 언급하면서 정작 돈은 깎은 겁니다.
이 구조물의 붕괴 위험 관련 진단 결과와 안전 조치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19년 정밀안전진단에서 16번 거더 강선 파단 확인
- 철거 작업 전 해당 지점 보강 조치 미실시
- 시방서 명시 안전시설(동바리, 버팀대 등) 공사비 미반영
- 낙하물 방지망 예산 4,730여만 원 원가 심사 단계 감액
- 상판 침하 발견 후에도 작업자 9차례 거더 진입
9번의 진입, 통제되지 않은 현장
저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위험하면 멈추라"는 말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압니다. 예전에 제가 있었던 학교 현장에서 구조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된 공종에 대해 자체 공사중지를 건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감리단과의 마찰로 현장 직원 대부분이 교체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멈추는 결정이 실제로는 본인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임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번 사고에서 작업자들은 상판 침하를 발견한 이후에도 거더 쪽으로 9차례나 진입했습니다. 사고 약 12시간 전에 이미 침하가 확인되어 작업 중지와 대피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거더 확인 및 자료 촬영을 위한 진입은 계속됐습니다. 사고 직전에는 세 명이 동시에 진입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차례 진입이 반복된 시점에서 상부가 접근 통제 조치를 내렸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작업자들은 아마도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해야 한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위험을 느끼는 사람이 직접 그 위험을 증명하기 위해 진입하는 상황, 이게 바로 현장에서 안전보다 확인과 보고가 우선되는 문화의 단면입니다. 현장 근로자의 안전은 윗선의 판단에 달려 있는데, 정작 그 판단을 내려야 할 상부는 접근 통제라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겁니다.
압쇄 공법(Demolition by Excavator)이란 작업자가 직접 해체 공간에 진입하지 않고 굴착기를 투입해 구조물을 파쇄하는 방법입니다. 사고 이후 서울시는 이 공법을 도입해 철거 시간을 기존 40시간에서 15시간으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방식이 처음부터 적용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시설안전공단이 발행하는 안전점검 지침에서도 손상된 PC구조물 해체 시 무인화 공법의 적용 검토를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시설안전공단).
건설업 산업재해 사망 통계를 보면 한국의 건설현장 사망만인율은 OECD 주요국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건설업은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이번 사고는 그 통계 속 숫자가 왜 줄지 않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번 사고는 위험을 알고도 예산을 깎고, 서류 상에는 안전 대책이 있지만 현장에는 아무것도 없고, 위험 신호가 반복돼도 접근을 통제하지 않은 세 가지 실패가 겹쳐 만들어진 사고입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거 위험하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저도 기술사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요즘입니다. 판단력과 전문성이 없으면 그 목소리는 회의실 밖을 나가지 못합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시설 예산을 가장 먼저 줄이는 관행, 그리고 현장 기술자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구조가 함께 바뀌기를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live/bNHjdrnwtTA?si=_h_dLoUSIFDhho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