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설계안전성검토 업무를 맡았을 때 이게 어느 현장에 해당되는지조차 파악하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를 들여다보고 나서야 윤곽이 잡혔는데, 문제는 법 조문보다 현장 적용이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설계안전성검토의 대상과 절차·비용을 정리하고, 실무에서 직접 느낀 서류 중복 문제까지 짚어보겠습니다.
검토대상과 절차·비용, 숫자로 따져보면
설계안전성검토(DFS, Design for Safety)란 설계 단계에서 공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굴하고, 그 저감대책을 수립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DFS란 시공 단계가 아닌 설계 단계에서 위험을 차단한다는 개념으로, 말하자면 도면을 보면서 앞으로 벌어질 사고를 상상하고 미리 막는 작업입니다.
이 제도의 근거는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이며, 의무 주체는 발주청입니다. 발주청이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준정부기관, 지방공사, 그리고 민간발전사업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제가 한 번은 사립학교 행정실 담당자분께 문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국토교통부에 공식 질의한 결과 사립학교는 발주청에 해당하지 않아 의무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단,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의 협조를 통해 자발적으로 받을 수는 있다고 합니다.
검토 대상 현장은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제98조 제1항의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과 거의 일치합니다. 핵심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2종 시설물 건설공사
- 지하 10m 이상 굴착 공사
- 폭발물 사용 공사 (20m 내 시설물 또는 100m 내 가축 사육 시)
- 10층 이상 16층 미만 건축물 및 10층 이상 건축물 리모델링·해체 공사
- 높이 31m 이상 비계, 높이 5m 이상 거푸집 및 동바리 사용 공사
- 갱폼 등 작업발판 일체형 거푸집, 복합형 가설구조물 사용 공사
여기서 거푸집 및 동바리란 콘크리트를 타설 할 때 형태를 잡아주는 틀과 그것을 받치는 지지대를 의미합니다. 지하층이 있거나 층고가 5m를 넘는 공간이 있으면 대부분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계단실만 5m를 초과하더라도 법적으로 제외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현장에서 자주 질문을 받는데, 미실시 시 과태료 1,000만 원, 미제출 시 100만 원으로 꽤 무겁습니다.
단,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이지만 설계안전성검토는 하지 않는 예외가 딱 하나 있습니다. 높이 10m 이상 천공기, 항타항발기,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만 사용하는 공사입니다. 2019년부터 제외됐는데, 설계 단계에서 이 장비들의 위험을 저감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용 구조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설계안전성검토 보고서 작성 비용과 국토안전관리원 검토 의뢰 비용입니다. 보고서 작성 비용은 법 시행 초기인 2017년에는 2,000만원에 달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건축공사 기준 약 500만 권, 토목공사는 약 700만 원 수준으로 안정됐습니다.
국토안전관리원 검토 비용은 공사비 기준으로 300억 미만 200만 원, 300억~1,000억 330만 원, 1,000억 이상 470만 원이며, 조건부 적정 후 보완 재검토는 추가 비용 없이 포함됩니다. 이 비용은 발주청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나, 과업지시서에 이미 설계 과업 내에 포함된 경우도 있어 내역서를 꼭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출처: 국토교통부).
검토 소요 기간은 보고서 작성 약 3주, 국토안전관리원 검토 약 4주, 보완 1주를 합산하면 총 약 두 달로 잡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실시설계 80% 완료 시점에 착수해서 착공 전까지 완료하는 것이 국토교통부의 권장 기준입니다.
서류 중복 문제, 이대로 괜찮은가
제가 이 업무를 하면서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설계안전성검토, 안전관리계획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는 이름도 다르고 제출 기관도 다르지만, 실제 작성 내용을 펼쳐 놓으면 구조가 거의 동일합니다.
안전관리계획서란 시공사가 공사 착공 전에 작성해 제출하는 서류로, 건설기술진흥법에 근거해 발주청 또는 인허가기관에 제출합니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란 산업안전보건법에 근거해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제출하는 서류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에서 의무화됩니다. 설계안전성검토는 앞서 설명한 대로 설계 단계에서 설계사가 작성하고 국토안전관리원이 검토합니다. 세 가지 모두 위험요소를 발굴하고 저감대책을 기술하는 구조로, 실무자 입장에서 보면 같은 내용을 세 곳에 반복 입력하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위험성평가를 강조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위험성평가란 작업 공정별로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그 위험도를 수치화해 관리하는 기법입니다. 취지는 좋은데, 실제로는 비슷한 위험성평가표가 문서마다 반복 삽입되면서 서류 분량만 과도하게 늘어나는 경우를 제가 직접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현장에서 중요한 위험요소 몇 가지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과, 서류 수백 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구조적 문제도 있습니다. 발주청과 검토기관은 요구 사항을 계속 추가하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대부분 시공사가 떠안는 구조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검토 의견에서 조건부 적정이 나오는 비율이 95% 이상인데, 이 중 상당수는 이미 도면에서 충분히 다뤄진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서술하도록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검토기관 입장에서도 비용을 받고 그냥 '적정'을 내기 어렵다는 현실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구조가 반복되면 결국 서류는 두꺼워지고 현장의 실질적 안전은 개선되지 않는 역설이 생깁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간한 건설업 사망사고 분석 자료를 보면, 사고 원인의 상당 비율이 현장 관리 실패와 작업자 행동에서 비롯됩니다(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서류가 아닌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서류를 과감히 통합하고, 실제 시공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계안전성검토 자체가 나쁜 제도라는 뜻이 아닙니다. 설계 단계부터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옳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비슷한 서류를 여러 기관에 반복 제출하는 방식으로는 현장 실무자의 피로만 쌓이고, 정작 중요한 위험관리에 집중할 여력이 줄어듭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제도 개선 논의가 좀 더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건설 안전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해당 여부는 관계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