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SI 무상지원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신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직 30대라 스마트 안전장비 쪽에 꽤 긍정적인 편인데, 막상 현장에서 직접 써보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느낍니다. 800억 원이 투입된 장비의 60%가 방치 상태라는 점검 결과는, 솔직히 놀랍지 않았습니다. 이미 비슷한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봐왔으니까요.
현장 활용률이 말해주는 것들
저번 현장에서 AI CCTV를 설치했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통신 문제로 꽤 애를 먹었습니다. 지하층이나 구조가 복잡한 공간에서는 무선 통신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결국 유선 구성으로 전환하거나 별도의 중계기를 추가로 달아야 했습니다. 이때 들어간 통신 인프라 구축 비용은 장비 가격보다 오히려 더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직접 찾아가면서 결국 설치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런 과정을 혼자 감당하라고 하면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과 고용노동부가 안전보건공단의 산재예방사업을 점검한 결과를 보면, 3년간 투입된 스마트 안전장비의 부적정 활용률이 60%에 달했습니다. 차량 충돌예방장치는 80%, 근력보조슈트는 76%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여기서 근력보조슈트(Exoskeleton)란 착용자의 근골격에 가해지는 부하를 분산시켜 반복 작업 시 근육 피로를 줄여주는 웨어러블 보조 기기를 말합니다. 무거운 자재를 반복적으로 드는 작업자에게 특히 효과적이지만, 착용 방법이 익숙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직접 봐온 장면과 겹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연세가 있는 부장급 이상 관리자들은 스마트 장비를 처음 접할 때 그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설치나 세팅, 간단한 조작도 결국 대리나 과장급 직원에게 넘어가고, 정작 현장을 총괄하는 관리자는 장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방치되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장비는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스마트 안전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단순히 장비를 납품하는 것 이상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무너지는 지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통신 인프라 미비: IoT 센서 기반 장비는 안정적인 네트워크 환경이 전제조건인데, 지하나 협소한 현장에서는 LTE·WiFi 신호가 불안정해 장비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 운용 인력 부재: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는 전담 안전 관리 인력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아, 장비가 도입돼도 관리 주체가 불분명합니다.
- 사용자 저항감: 작업자 입장에서 센서가 부착된 웨어러블 기기나 CCTV는 감시 도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 착용이나 사용 자체를 꺼리는 사례가 나타납니다.
2025년 산재 사망자의 78.6%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습니다(출처: 안전보건공단).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곳에 정작 장비를 제대로 쓸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셈입니다.
운영체계 없이 기술은 장식품이 된다
제가 경험상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기술 자체의 성능보다 그것을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운영체계가 더 결정적이라는 점입니다. IoT(Internet of Things)란 사물에 센서와 통신 모듈을 내장해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 구조를 말합니다. 스마트 안전장비의 대부분이 이 IoT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그것을 분석하고 현장 조치로 연결하는 사람과 프로세스가 없으면 수집된 데이터는 그냥 쌓이다가 사라집니다.
이번 점검에서 기술지도 과정의 허위·부실 보고가 191건 적발됐고, 신규 설비를 지원받은 사업장의 77.3%는 기존 노후 설비를 폐기하지 않은 채 계속 쓰거나 다른 사업장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조금은 지급됐고 서류는 제출됐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산 집행 여부와 실제 효과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대기업 1군 건설사들이 올해부터 스마트 AI 전담 부서를 별도로 신설하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스마트 안전관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건설 현장 지식과 IT·통신 기술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력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그 두 영역이 분리돼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을 아는 사람이 통신 기술을 이해하거나, 반대로 기술을 아는 사람이 현장 맥락을 파악하는 구조가 되어야 시너지가 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간격은 생각보다 쉽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중요하게 연결됩니다. 엣지 컴퓨팅이란 데이터를 중앙 서버까지 보내지 않고 수집 현장 근처에서 바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통신이 불안정한 현장에서도 실시간 분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네트워크 환경이 열악한 소규모 건설 현장이나 지하 공간에서 스마트 안전장비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중앙 서버 의존도를 낮추는 엣지 컴퓨팅 구조로의 전환이 하나의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 안전관리는 분명 가야 할 방향입니다.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 위험한 공간, 반복 작업이 집중되는 지점까지 기술이 커버할 수 있다면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더 잘 활용하는 방향이 맞습니다. 다만 지금은 기술의 속도에 비해 현장의 준비가 아직 조금 늦은 상태입니다. 올해 산재예방 예산이 역대 최대인 1조 5,758억원으로 편성된 만큼, 장비 대수를 늘리는 것만큼이나 그 장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운영체계와 교육 인프라에도 예산의 무게중심이 옮겨가야 한다고 봅니다. 안전은 장비 스펙이 아니라, 그것을 현장에서 굴리는 사람과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참고: https://www.anjunj.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