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라는 말을 생각보다 자주 듣습니다. 발판이 잠시 미끄러지기도 하고, 머리 위로 자재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작업자가 철근에 걸려 중심을 잃거나, 사다리에서 발을 헛디뎠지만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을 우리는 흔히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안전관리자로 처음 현장에 왔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경험이 쌓일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고는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된 '괜찮았던 순간' 끝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대재해보다 오히려 아차사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이 말하는 아차사고의 의미
안전 분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론 중 하나가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입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중대재해 1건이 발생하기 전에 경미한 사고 29건과 아차사고 300건이 존재한다는 경험 법칙입니다. 물론 모든 현장이 반드시 1:29:300의 비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의미입니다. 큰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위험을 반복해서 지나친 결과라는 점입니다.
아차사고란 실제 부상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상황이 달랐더라면 충분히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을 말합니다. 발판이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은 경우, 자재가 머리 옆으로 떨어졌지만 맞지 않은 경우, 안전난간이 없었지만 운 좋게 추락하지 않은 경우 모두 아차사고에 해당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대부분 "별일 없었으니까 됐다."라는 말과 함께 잊힙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때부터 위험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성평가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뒤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작은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개선하는 것이 위험성평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배우는 안전과 현장의 안전은 조금 달랐습니다
건설안전을 공부하면서는 하인리히 법칙도 배우고, 위험성평가도 배우고, TBM도 배웁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와보니 책에서 배우는 안전과 현장의 안전은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현장은 안전관리자가 저 혼자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관리 업무는 물론이고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른 안전관리계획, 위험성평가, 교육, 점검, 각종 회의와 행정업무까지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현장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현장을 충분히 보지 못하는 순간도 생깁니다.
안전관리자가 모든 위험을 직접 발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안전관리자'보다 '좋은 안전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아직도 일부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를 위험을 예방하는 사람보다 안전시설물을 설치하고 서류를 관리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험요인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현장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남아 있는 한, 안전관리자 혼자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차사고 신고는 제도보다 문화의 문제입니다
최근에는 QR코드를 이용한 아차사고 신고 시스템이나 포인트 적립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가 많이 늘었습니다. 저희 회사 역시 QR코드를 활용해 누구나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도만 보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작업자들은 신고를 하면 작업 절차가 하나 더 생기거나, 작업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신고했다가 일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경력이 오래된 작업자들에게서는 또 다른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2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작업해 온 분들은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해서 다치지 않았다."라는 경험을 더 신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한 번이라도 사고를 경험한 작업자는 작은 위험에도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저는 이 차이를 보면서 안전은 결국 경험보다 인식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차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신고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신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차사고를 보고한 사람이 문제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현장을 더 안전하게 만든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신고 문화도 함께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TBM은 회의보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차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TBM(Tool Box Meeting)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작업 전 10분 정도 작업 내용을 공유하고 위험요인을 확인하는 활동으로, 저 역시 매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TBM은 체크리스트를 읽는 시간이 아니라 작업자와 대화하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이렇게 작업하시면 안 됩니다.", "이건 위험합니다."처럼 지시하는 방식이 안전관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대형 건설사 안전관리자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분은 작업자에게 먼저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작업해 보시면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요?", "이 방법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먼저 의견을 묻고, 작업자가 실제로 더 편하고 효율적이라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작업방법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작업자는 억지로 시켜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야 행동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전관리자는 사람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저처럼 안전관리자가 1명인 현장에서는 교육, 점검, 서류, 회의, 위험성평가까지 수행하다 보면 작업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지적보다 대화를 먼저 하는 안전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좋은 안전은 작업환경부터 바꾼다고 배웠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작업환경 자체를 바꾸는 안전관리였습니다. 기둥과 벽체 철근 끝단을 미리 구부려 작업자가 이동하면서 걸리거나 찔릴 위험을 줄여 놓은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법에서 반드시 하라고 정한 사항이라기보다, 작업자가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위험요인을 먼저 제거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정도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안전관리였습니다. 안전은 사고가 발생한 뒤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고가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호구를 착용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업자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작업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인 예방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도면검토에서 시작되는 안전관리
저는 산업안전과 건설안전을 따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른 안전관리 업무도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설안전기술사를 공부하면서도 두 분야를 하나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느 대형 건설사의 안전부장님은 착공 전에 도면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작업자의 이동 동선과 추락, 협착, 낙하 위험요인을 미리 찾아 개선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도면을 보면서 공정을 이해하고 작업순서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면, 그분은 도면만 보고도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위험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메타인지적으로 저 자신을 돌아보면 아직 그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인정했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조금은 분명해졌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착공 전에 도면을 검토하면서 위험요인을 먼저 찾아낼 수 있는 안전관리자가 되고 싶습니다.
결국 안전은 사람에게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아차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위험성평가도 필요하고, TBM도 필요하며, 아차사고 신고제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좋은 제도만으로는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작업자를 존중하는 태도, 작업자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 그리고 위험요인을 발견했을 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넘기지 않는 문화가 함께 만들어질 때 비로소 안전은 현장에 자리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법과 기준을 더 공부해야 하고, 도면을 보는 능력도 키워야 하며, 작업자와 소통하는 방법도 계속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좋은 안전관리자는 사고가 발생한 뒤 잘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람과 작업환경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안전관리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현장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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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10분 산업안전보건교육] 아차, 사고가 날 뻔했잖아! 아차사고 목격하면 어디로 신고해야할까? https://youtu.be/AEmvaCOJ9bg?si=-wWe-MVo4N06UH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