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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안전관리 (중복행정, 상태기반유지보수, 책임구조)

by thirdwind3 2026. 5. 31.

철도안전 사후조치에서 선제적 예방으로의 대전환
철도안전 사후조치에서 선제적 예방으로 대전환

 

 철도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안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쓰이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 철도안전관리계획서를 작성했을 때, 저도 모르게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게 정말 철도를 위한 법인가?" 올해 1~4월 사이 철도사고 13건, 장애 48건이 발생했고 국토교통부가 철도안전간담회를 개최한 배경을 보며,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그 의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중복행정: 철도안전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사이에서

 철도안전관리 업무를 처음 맡았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철도안전관리계획서를 준비하면서 내용을 하나씩 뜯어보니, 작업 전 안전교육, 위험성평가, 작업계획서 작성, 보호구 착용 같은 항목들이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요구하는 것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위험성평가란 사업장에서 잠재적인 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 위험이 실제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는 체계적인 절차를 의미합니다. 이 절차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에서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데, 철도안전관리계획서에도 사실상 같은 내용을 별도 양식으로 다시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구조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 경우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현장 안전관리자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안전서류를 관리하는데, 내용은 같고 양식만 다른 문서를 이중으로 작성하다 보면 안전 업무의 본질보다 행정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됩니다. 실질적인 안전 향상보다 서류를 채우는 데 에너지가 집중되는 상황, 현장에서는 이걸 '행정 피로'라고 부릅니다.

 

 결재 체계도 문제였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문서라면 안전관리자, 관리감독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그런데 철도안전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내용이 혼합된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누가 책임지고 검토해야 하는지 모호해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는데, 결국 현장에서는 기존 안전관리 체계를 그대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태기반유지보수: 새로운 접근인가, 또 다른 대증요법인가

 이번 간담회에서 코레일이 발표한 핵심은 상태기반유지보수(CBM, Condition Based Maintenance) 체계 확대입니다. 여기서 상태기반유지보수(CBM)란 부품의 실제 상태와 운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정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기존의 정기점검 방식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라는 일률적 기준이었다면, CBM은 "실제 마모·열화 상태를 보고 교체"하는 개념으로, 불필요한 교체를 줄이고 진짜 위험한 부품을 먼저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방향성 자체는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전담조직을 구성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그 조직이 생산한 판단을 현장에서 실제로 얼마나 빨리 반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에 더해 형식승인 검사 강화와 디지털 기술 및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승인 방안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형식승인 검사란 철도 차량이나 부품이 정해진 기술 기준을 충족하는지 제조 단계에서 검증하는 절차로, 쉽게 말해 시장에 나오기 전 안전성을 검증하는 관문입니다(출처: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시뮬레이션 기반 검증이 도입되면 실물 시험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서도 더 다양한 조건에서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개선 방향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운행 데이터 기반 부품 수명 예측으로 고장 전 선제 정비
  • 차량 상태진단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유지보수 빅데이터 체계 구축
  • 형식승인 검사에 디지털 시뮬레이션 기술 도입으로 검증 정밀도 향상
  • 위험도 기반 안전검사 및 외부 전문가 합동검사반 운영

책임구조: 사고 나면 현장 탓, 평소엔 누구 관리인가

 제가 가장 불만스럽게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법과 지침이 명확하지 않으면, 평소에는 누구도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면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 작업자에게 전가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매뉴얼을 만들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이번 간담회에서 인적오류(Human Error) 분석 방법론 개선을 발표한 것은 그래서 주목할 부분입니다. 여기서 인적오류(Human Error)란 작업자의 착오, 전방 부주의, 절차 누락 등 인간의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 요인을 의미합니다. 기존에는 인적오류가 발생하면 당사자의 규정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는데, 이제는 적정 휴식시간 확보 여부, 안전장치 구비 여부 같은 환경요인을 포함한 종합 분석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향입니다(출처: 한국교통안전공단).

 

 이 부분은 그동안 철도 관련 기관들이 사고 원인을 개인 과실로 귀결시키는 경향이 있었는데, 환경요인과 시스템 요인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방향 자체가 한 단계 진전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비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관리비라는 제도를 통해 안전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공사비 안에서 법적으로 확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도안전관리 업무는 별도로 요구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독립적인 철도안전관리비 같은 재원 체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기존 공사비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로 감당하라는 구조인데, 그렇다면 별도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철도안전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려면 철도 특유의 위험요소인 선로 접근 작업, 열차 운행과의 간섭, 전차선 감전 위험 등을 중심으로 법 체계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산업안전보건법 내용과 혼합된 형태로는 현장의 행정 부담만 늘고 실질적인 안전 향상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간담회가 "문제를 인식했다"는 신호탄은 됐다고 봅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에 나올 대책이 또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으려면, 중복되는 법 체계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철도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책임구조와 재원 체계를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법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철도안전관리가 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http://www.anjunj.com/news/articleView.html?idxno=4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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